TV를 켠다.
화려한 광고수법들로 치장된 상업적 영상들에 금새 눈이 현혹되버린다.
한동안 멍하니 차례로 흘러가는 광고들을 보고있다가 다른채널로 돌려본다.
채널을 돌리는 별다른 목적은 없다. 그저 다른 채널 어딘가에서 흥미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길 막연히 기대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런닝머신에서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시선을 TV에서 뗀다.
TV를 보지 않으니 피트니스 센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가 솔깃한다.
무슨 곡인지 알아보고 싶어 아이팟을 꺼내 미도미 어플을 실행시킨다.
'아, 허경영 노래였구나.'
아이팟을 집어넣으려다 파랑새에 새 트윗메세지가 뜬다. 파랑새를 켜고 쏟아지는 각종 트윗들을 서핑한다.

-2010년4월1일 나의 하루중-


세상이 정보 천지입니다.
공중에선 어디의 것인지도 모를 와이파이 신호가 붕붕 떠나디고,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모든 정보를 접합니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선 정보의 제조와 공유보다, 그것을 분별하고 거부하는일이 더 힘든 것이 돼 버린것 같네요.
이제 더 이상 어떤것을 기억할 필요도 없어졌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적절히 움직인다"라는 최소한의 사고만으로도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궁금한게 있으면 그저 메타블로그와 트위터 등으로 질문을 날리기만 하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성실한 답변을 해 줍니다. 그것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같은 분야의 다른 전문가에 의해 걸러지기때문에, 아주 따끈따끈하게 제조된 맛있는 정보만을 모니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나 또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네트워크에서 적응하기 위해 개개인은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되길 강요받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봐요.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XX대행", "XX에이전시" 같은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결혼준비대행, 다이어트식단관리사, 여행사, 각종 펀드매니저, 자산관리사, 자동차딜러, 공과금납부, 청소대행, 심지어는 어린이집 같은 육아대행까지도...
현상을 보면, 나 혼자서는 도저히 삶을 연명할 수 없는 것 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들은 이제 과거에 한명이 모두 도맡아 해야했던 일생의 거의 모든 것들을 남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과 시간과, 물질, 그리고 지식이 아주 다른 서로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 우리는 극도의 상부상조의 삶을 살고 있는것입니다.

물론,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같은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트위터 사회는 제게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라, 너무 다양한 인간미를 느끼기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할까요? "우리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다!"라는 모순적인 Precept를 내새우는 트위터리안들과 메타블로거들의 모습에 현기증이 날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요즘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생각합니다. 여기에선 집단의 일부분에 불과했던 한 일개미가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이 묘사되는데요, 문득 이 개미의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십년도 훨씬 전인 그 시절에 개미의 집단 지성을 소설속에 묘사하고서, 이를 이용한 집단 지성 컴퓨터의 초안을 상상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통찰력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은 소설속에 묘사된 이 전체지향적인 개미사회가 인간세계에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정신줄을 놓고 지금의 IT트렌드에 몸을 맡겨버리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개미가 되버릴 지도 모르죠. 그래서 더욱 주인공 개미의 모습이 의미가 있습니다. 주인공 개미는 소설속에서 로열젤리를 먹고 결국 여왕개미가 됩니다. 여왕개미는 모든 개미들을 이어주는 허브의 역할을 하며, 집단의 존속 여부에 대한 독립적인 결정권을 가집니다. 하지만 트위터에선 여왕개미가 없습니다.

집단 지성의 장점은 전체를 연결함으로서 1명의 천재를 100명의 바보가 이길 수 있는 효과를 내지만, 다양성이나 개성의 손실을 감안한다면, 최고의 시스템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저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나. 인간인 우리에게 이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어느 인간이 개인주의를 철저히 삭힐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요? 분명히 모든 인간의 행위는 당사자의 욕망이 무의식중에 깃들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에겐 나르시시즘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내면의 "세상의 중심은 결국 나"라는 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 우리는 집단을 위해서 개성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여왕개미가 되려고 발버둥 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이제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입니다.

최신 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라게 되는 어린이들이 과연 이 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네요. 자기애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단 지성에 빈번히 노출되면, 그 어린이들에게는 결국 타인에 의한 자아가 형성될 것입니다. 여기서 타인에 의한 자아의 위험성이란, 크리스트교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자신의 달란트가 아닌 다른 달란트를 인생의 키워드로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트위터는 기본적으로 무한하다고 할 정도의 자유도가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주제들이 떠다니며, 개개인은 그 시스템속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관계없을지도 모를 분야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솔직히 트위터나 메타블로그 서비스로 대변되는 집단지성의 올바른 사용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현실의 자아"와 공통점을 갖는 주제를 찾아 네트워크를 구성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여간 쉬운 일이어야지요...그래서 트위터는 어렵고 위험합니다.
아이폰은 좋아하면서 트위터는 무서워 한다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아무튼 저는, 한가지만 할 줄 알고, 그저 받아들이기만하고, 욕구를 즉시 충족시키지 못해서 안달이 나고, 전체를 위해서 개성을 사뿐히 즈려밟는 그런 바보가 되기 싫습니다.
저의 나르시시즘이 강한것도 이유중 하나겠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오감으로 모든것을 느끼며, 머리와 마음으로 동시에 받아들이는 경험이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동적 수용자의 입장이 아리나 적극적 생산자가 되라고 내 자기애가 강요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여러가지들을 다 잘하고 싶습니다.

훗날 인생을 돌아보는 글을 쓸 때, 아마 저는 지금 시기를 이렇게 이름붙일것 같습니다.

완벽주의와 나르시시즘이 동맹을 맺고 트위터제국과 한판했던 시기.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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