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전까지 신경숙씨의 소설은 매스컴에서 제목으로만 접했던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시시껄렁한 프로필묻기, 날씨얘기, 학업이나 직장얘기는 하기싫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기로 했다.


누군가와 책이나 영화의 내용을 공유하고 있을때면 마음이 따뜻해 지는걸 느껴요.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읽는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이 인용구는 내가 이전에 트친들로 하여금 아바타의 사헤일루를 들먹이게 만들며 트위터에올렸던 단상이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 사실은 같은 선생님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같은 여행지를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외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상대방과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는 처음에는, 이 책도 역시나 소위, 인위를 통한 자기표현을 멋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요새 소설들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최근에 읽은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은 읽고나서 '도대체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주제의식이 뭘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바로 어수룩하게 인위적인 인물들의 성격들 때문이었다. 그런 미성숙한 인위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작가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전달하기에는 다소 띠꺼움이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충분히 성숙해 있었고, 글을 읽는 내내 책은 나의 내면에 있을지 모르는 비슷한 성격들을 찾게 만들었다.


이 책은 나만 책에 의지하거나, 책이 독자에게만 의지하거나("내 글을 열심히 해석해주세요"따위)하는 식의 소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정말 훌륭한 인용이 되는 것 같다.

 

 

가나안 사람인 크리스토프는 거인이었는데, 강가에 살면서 자신은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에게만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지. 자기 자신을 바칠 존재를 찾는 일에 지친 크리스토프는 실의에 빠져 어느 강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렀어.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지냈다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크리스토프는 겨우 삿대 하나만 지닌 채로, 강물이 아무리 불어나도 그 삿대로 강물을 헤쳐나가며 사람들을 강 저편으로 건네주곤 했다네. 그에겐 그저 소일거리였지. 그러던 어느날 크리스토프는 한밤중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한 아이를 발견하고, 강을 건너게 해달라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지. 그런데 크리스토프가 강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강물이 마구 불어나기 시작했네. 순식간에 장신의 크리스토프 키를 넘을 지경으로 강물이 범람했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이도 강물이 불어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거운 무게가 크리스토프의 어깨에 내려앉았지. 크리스토프는 처음으로 자신이 강물에 빠져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어. 결국 크리스토프는 간신히 강물을 건넜어. 강가에 아이를 내려놓으니 아이는 사라지고 예수가 눈앞에 나타났지. "그대는 방금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여러분들은 크리스토프인가 아니면 등에 엎힌 아이인가? 여러분들은 모두 크리스토프이면서 아이이기도 하다. (pp59-63 소설 속 윤교수의 크리스토프 이야기)


위의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책에 대한 내 태도에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줬다. 나에게 이 책은 치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여행, 강물을 건너는 과정을 겪은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책을 편식하고, 잡지 읽기를 좋아하고, 수식으로 뒤덮힌 전공서적과 가까이 하면서 나는 책을 reference의 대상으로만 봐왔었다. 그렇게 참고서로만 생각하며 읽었던 책들을 통해 만든 기억들은 나 혼자만의 추억이 됐다. 추억은 나눔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함께 강물을 건너는 사람에서 같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도시를 알기 위해 걷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걷는 일은 스쳐간 생각을 불러오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했다.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숲길이 나오고 비좁은 시장통 길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고 도움을 청하고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타인과 풍경이 동시에 있었다.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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