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취업하기 정말 어렵다. 
비교적 운좋게 취업해서 하루아침에 구직자에서 채용상담자가 되는 경험을 하고보니,
정말 눈물겹도록 이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고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우리들은 글을 읽을 수 있을때부터 천편일률적으로 학업을 강요당하고 대학 졸업에 이르러서는 취업의 내용과 방향성마저도 강요당한다.
하지만, 겉으로보기엔 그 누구도 직접적인 강요를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암묵적인 강요이자 보이지 않는 채찍질과 같다.
우리 일상 생활에 까지도 깊숙이 침투해 있는 자본주의가 구직자들의 사상과 행동에 까지 침투하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취업을 위한 무언가를 쌓아간다. 자본주의가 오로지 부의 축적을 지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펙의 축적, 취업을 위한 스토리의 축적, 이력서 쓰는 노하우의 축적,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맥의 축적....
이런 사회에서 결국 우리는 상품화되고 사물화 되고 만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소비가 아니라 성장, 다시 말해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사는 한, 이런 사물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생산의 극대화를 겨냥한 분업 체계는 결국 인간을 한낱 기계 부품, 즉 사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은 오직 사물을 위해 존재하고, 사물에 의해 존재한다.
이 사회에서 우리의 신체와 활동을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 아니라 우리의 직장, 즉 사물이다.
우리는 사물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빌어먹을 취업시장에서는 인간성을 관심사로 두는것이 너무도 무섭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물의 노예, 자본의 노예, 취업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성장제일주의 사회에서 사물화의 열차에 동승하지 않는 사람은 아웃사이더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 젊은이들이 어떻게 감당해야만 하는걸까..?



   

어제부터 조르주 바타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인디언 사회의 증여문화에서 나는 희망을 봤다.
끊임없이 축적되는 젊은이들의 취업에 대한 희생과 노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잉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요새 한창 관심을 가지고 있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은 이 과잉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즐겁게 소비하지 못할때 공멸을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에 고생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국가적, 기업적인 차원의 증여, 즉 포틀래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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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6511.ediblebrooklyns.com BlogIcon Ray Ban outlet 2013.07.18 07:36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귀를 기울여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