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기까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작가는 작정을 하고 무분별하게 생각을 흘리는것 같다.

사소한 습관 뒤에 감춰진 놀라운 심리의 비밀?

웃기지 마시라. 다분히 전문적이지 않은 심리추론이다.

글쓴이는 누구든지 색안경만 벗어던지면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얘기를 하고있다.

다는 전문적인 습관의 기저를 알고 싶었을 뿐이고~

이 책은 수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니 내가 느낀 이 책은 주관성이 객관성보다 강한 색을 띄는 경향을 가진 수필이다.

글쓴이가 이것저것 습관과 사람의 심리에 대해 여러방면으로 접근한 것은 정말 좋았으나,

각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떨어져 나는 글쓴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은이는 "A는 B다. B는 C다. C는 D다. 따라서 A는 D다."라는 사고구조에 익숙한것 같다.

글쎄...예술과 삶에 대해 20년간 공부한 사람치고는 너무 안일한 전개이지 않은가 싶다.

사실, 나는 연역적 전개보다 귀납적 논리전개를 좋아한다.

내가 공학을 선택해 공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지 않다....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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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트위터 이벤트로 내게 배송되어온 온 이 책. 아니, 그 책 Das Buch.
잔뜩 기대에 부풀어 포장지를 뜯고 나온 것은 소리지르는 남자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표지였다.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보다 에세이를 즐기는 내 독서편식때문에 바로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을 책장에 꽂기도 전에 이걸 꼭 읽어야만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 든건가?
이벤트에 당첨되고 마냥 책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레 배송되어 온 이책의 표지를 보고나서부터 일까?
아니면, 사이클을 하며 처음으로 책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보기 시작했을때부터 일까?

강렬한 끌림에 미친듯이 활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2시간도 안걸려 책한권을 다 읽었다.
꼭 이 책의 주인공 비블리씨의 삶이 내 삶에 빙의된 것처럼.
책 한권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도 사실은 불편하다.
우습게도 이 불안함의 원인은 나도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면, 책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책을 단번에 다 읽었고, 감히 이 책을 평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때까지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건가?'
'내 분석력이 이토록 모자랐던가?'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꼭 서평을 쓸것이라고 트위터에 알린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읽고 나서 도무지 뭐가뭔지 알 수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혼란스러움, 내 편향적 독서습관, 내 모자란 집중력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심지어는 이 책의 가치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라는 한국판 이름은 뭔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만,
원어인 "Das Buch(그 책)"라는 책 제목은 영혼이 쏙 빠진 느낌이 든다. 다르게 말해서 섬뜩하다.
내가 분석한 것은 오직 하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이 책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이란 이런 것 이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게 아니라, 독자에게 사람과 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소설의 내용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것이다.
정말로 책이되어버린 비블리씨가 현실에 존재헀을리 만무하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자신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내 평생처음으로 책이란 물건에 존재의 의미, 다시말해 자아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설속에는 이런 인상깊은 구절이 나온다.

"책, 곧 죽은사람이 산 사람이 가진 특권보다 우월한 권리를 행사한다."



2001년에 쓰여진 이 책이 2010년을 살고 있는 내게 일으킨 동요는 2110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책속에 머무르고 그것은 책의 운명이 된다.

"운명이란 바로 당신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으니,"



평생을 책들 속에 파뭍혀 지내오던 비블리씨가 마침대 "그 책"을 통해 책이 됐을때, 그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유한하고 일회성이 있다. 하지만 책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집어 앞으로 펼쳐나가면 다시한번 그 운명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블리씨는 결국 인간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그리고 비블리씨를 책으로 만들었던 "그 책"은, 소설 말미에 다른 주인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그 운명을 시작하려 한다. 새 여주인도 아마 책이 되겠지.

사람이 "그 책"이 되서 운명을 다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책"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시작한다. 이런 "그 책"의 끔찍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잔인한 설정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책안에 있는 작가의 운명은, 다시 처음부터 읽는 행동을 통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밤에 책이 되는 꿈을 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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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적힌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문구. 표지의 그 문구는 20대의 성공담을 담은 에세이들에 열광하고 있던 나에게, 새 자기개발서를 발견했다는 묘한 흥분감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그 사실에 묘한 흥분감

 

은 금새 사그라들었고, 나는 500페이지나 되는 긴 책을 다 읽어나갈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책은 책장이 넘겨질 수록 나를 흥분시켰다. 작가는 마치 타고난 소설가 같았다. 흔히 볼수 있는 현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진정으로 박학다식한 면모를 가지고서 완벽하게 주인공의 인생을 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요새 내가 강박처럼 사로잡혀있는 "꿈과 성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30년정도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꿈과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명확한 해답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누구나 간절히 바라며 살아가는 "탈출"이라는 것이 꿈의 성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시말해, "내가 니 나이때는 말이야." 또는 "내가 당신이라면 더 나을 수 있어."와 같은, 충고를 가장한 어른들의 푸념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해줬다.


가족이라는 의무에 사로잡혀 꿈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벤. 두 번째 삶에서 그는 꿈을 옭아메던 그 의무에서 벗어날수 있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삶에서 벤은 그토록 바라던 사진사로서의 성공가도를 열 기회를 잡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번엔 신분의 은닉을 위해 성공을 하면 안된다는 의무에 사로잡히고 만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탈출하고 나니, 꿈에서 탈출해야만 현실에서 살아남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의무는 저버릴 것이 아니라, 꿈을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우리가 안고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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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치 소용돌이 같다. 강렬히 끌어당기며 으스스하고 또한 월등하다." -예술과 문학-





김영사 트위터 이벤트로 내게 배송되어온 온 이 책. 아니, 그 책 Das Buch.
잔뜩 기대에 부풀어 포장지를 뜯고 나온 것은 소리지르는 남자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표지였다.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보다 에세이를 즐기는 내 독서편식때문에 바로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을 책장에 꽂기도 전에 이걸 꼭 읽어야만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 든건가?
이벤트에 당첨되고 마냥 책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레 배송되어 온 이책의 표지를 보고나서부터 일까?
아니면, 사이클을 하며 처음으로 책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보기 시작했을때부터 일까?

강렬한 끌림에 미친듯이 활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2시간도 안걸려 책한권을 다 읽었다.
꼭 이 책의 주인공 비블리씨의 삶이 내 삶에 빙의된 것처럼.
책 한권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도 사실은 불편하다.
우습게도 이 불안함의 원인은 나도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면, 책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책을 단번에 다 읽었고, 감히 이 책을 평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때까지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건가?'
'내 분석력이 이토록 모자랐던가?'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꼭 서평을 쓸것이라고 트위터에 알린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읽고 나서 도무지 뭐가뭔지 알 수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혼란스러움, 내 편향적 독서습관, 내 모자란 집중력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심지어는 이 책의 가치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라는 한국판 이름은 뭔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만,
원어인 "Das Buch(그 책)"라는 책 제목은 영혼이 쏙 빠진 느낌이 든다. 다르게 말해서 섬뜩하다.
내가 분석한 것은 오직 하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이 책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이란 이런 것 이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게 아니라, 독자에게 사람과 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소설의 내용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것이다.
정말로 책이되어버린 비블리씨가 현실에 존재헀을리 만무하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자신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내 평생처음으로 책이란 물건에 존재의 의미, 다시말해 자아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설속에는 이런 인상깊은 구절이 나온다.

"책, 곧 죽은사람이 산 사람이 가진 특권보다 우월한 권리를 행사한다."



2001년에 쓰여진 이 책이 2010년을 살고 있는 내게 일으킨 동요는 2110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책속에 머무르고 그것은 책의 운명이 된다.

"운명이란 바로 당신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으니,"



평생을 책들 속에 파뭍혀 지내오던 비블리씨가 마침대 "그 책"을 통해 책이 됐을때, 그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유한하고 일회성이 있다. 하지만 책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집어 앞으로 펼쳐나가면 다시한번 그 운명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블리씨는 결국 인간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그리고 비블리씨를 책으로 만들었던 "그 책"은, 소설 말미에 다른 주인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그 운명을 시작하려 한다. 새 여주인도 아마 책이 되겠지.

사람이 "그 책"이 되서 운명을 다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책"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시작한다. 이런 "그 책"의 끔찍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잔인한 설정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책안에 있는 작가의 운명은, 다시 처음부터 읽는 행동을 통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밤에 책이 되는 꿈을 꿀 것만 같다.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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