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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8 모털엔진 Motal Engine
  2. 2010.04.13 『책이 되어버린 남자』

모털엔진 Motal Engine

2010.05.18 10:48 |
 
 
 

 2002년에 나와서 8년만에 한국에 번역본으로 출판된 모털엔진. 원래는 SF라곤 잘 안보는 편인데, 북피니언들의 추천과, 인터파크 도서 아이폰어플 설치에 힘입어 읽게 됐다. 이 책의 원본표지를 보고있자니, 어릴적 방안가득 빽빽하게 채워진 아버지 서고에서 SF소설만 골라뽑아 신기한 기계 그림들만 보고 넘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내게 과학이란 현실적인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무서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 막연한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뀐것일까? 나는 지금 과학과 공학을 업으로 삼고 있다. 자라면서 과학은 내게 막연했던 두려움을 잊게 만들고, 모든 현실을 통제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는 법을 알려줬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쩌면 과학을 신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SF(공상과학소설 Science Fiction)과 영화는 분명히 Fiction이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가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나는 모털엔진이라는 책을 픽션으로서 저자의 주관성을 고려하며 읽기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참거짓을 가려내는(다분히 리얼리즘이 가미된) 방식으로 읽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분명 과학신봉주의자 였으니까 말이다.

 흰수염고래가 멸종한지 천년이 지났고, 미국과 영국이 몇 천년전에 사라져버린 먼 미래사회에서 엔진과 바퀴가 왠말이며, 아르곤 전구가 왠말인가? 그리고 과연 그 시대에도 "박물관"이란 것이 물질적으로 존재할 수 있냔 말인가?

 이 소설의 배경은 "60분 전쟁"이라는 설정에 이르러 식상함의 극치를 보인다. 왜 먼 미래를 쓰는 소설가들과 영화 작가들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지구적 규모의 전쟁 따위만으로 메꾸려 하는가?

 하긴... 하루 주식시장 예측도 제대로 못해 쩔쩔메는 인간이 미친듯 먼 미래를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게 가당키나 할까마는.... 그러나 예전의 많은 공상과학 소설의 개념들, 제품들, 미풍양속들, 정치적 구조 및 이념들의 상당수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 하다.

 이 책은 잊고있었던 어릴적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뭐~ 책 내용은 온통 비과학적인 내용 투성이라, 책을 읽는 내내 혐오스런 눈빛을 감출수가 없었지만, 내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과학신봉주의자(Sciencidian정도가 되려나?)였던 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은, 이 책이 내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던 책이라는 사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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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치 소용돌이 같다. 강렬히 끌어당기며 으스스하고 또한 월등하다." -예술과 문학-





김영사 트위터 이벤트로 내게 배송되어온 온 이 책. 아니, 그 책 Das Buch.
잔뜩 기대에 부풀어 포장지를 뜯고 나온 것은 소리지르는 남자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표지였다.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보다 에세이를 즐기는 내 독서편식때문에 바로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을 책장에 꽂기도 전에 이걸 꼭 읽어야만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 든건가?
이벤트에 당첨되고 마냥 책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레 배송되어 온 이책의 표지를 보고나서부터 일까?
아니면, 사이클을 하며 처음으로 책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보기 시작했을때부터 일까?

강렬한 끌림에 미친듯이 활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2시간도 안걸려 책한권을 다 읽었다.
꼭 이 책의 주인공 비블리씨의 삶이 내 삶에 빙의된 것처럼.
책 한권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도 사실은 불편하다.
우습게도 이 불안함의 원인은 나도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면, 책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책을 단번에 다 읽었고, 감히 이 책을 평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때까지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건가?'
'내 분석력이 이토록 모자랐던가?'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꼭 서평을 쓸것이라고 트위터에 알린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읽고 나서 도무지 뭐가뭔지 알 수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혼란스러움, 내 편향적 독서습관, 내 모자란 집중력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심지어는 이 책의 가치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라는 한국판 이름은 뭔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만,
원어인 "Das Buch(그 책)"라는 책 제목은 영혼이 쏙 빠진 느낌이 든다. 다르게 말해서 섬뜩하다.
내가 분석한 것은 오직 하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이 책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이란 이런 것 이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게 아니라, 독자에게 사람과 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소설의 내용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것이다.
정말로 책이되어버린 비블리씨가 현실에 존재헀을리 만무하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자신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내 평생처음으로 책이란 물건에 존재의 의미, 다시말해 자아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설속에는 이런 인상깊은 구절이 나온다.

"책, 곧 죽은사람이 산 사람이 가진 특권보다 우월한 권리를 행사한다."



2001년에 쓰여진 이 책이 2010년을 살고 있는 내게 일으킨 동요는 2110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책속에 머무르고 그것은 책의 운명이 된다.

"운명이란 바로 당신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으니,"



평생을 책들 속에 파뭍혀 지내오던 비블리씨가 마침대 "그 책"을 통해 책이 됐을때, 그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유한하고 일회성이 있다. 하지만 책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집어 앞으로 펼쳐나가면 다시한번 그 운명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블리씨는 결국 인간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그리고 비블리씨를 책으로 만들었던 "그 책"은, 소설 말미에 다른 주인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그 운명을 시작하려 한다. 새 여주인도 아마 책이 되겠지.

사람이 "그 책"이 되서 운명을 다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책"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시작한다. 이런 "그 책"의 끔찍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잔인한 설정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책안에 있는 작가의 운명은, 다시 처음부터 읽는 행동을 통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밤에 책이 되는 꿈을 꿀 것만 같다.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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