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기까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작가는 작정을 하고 무분별하게 생각을 흘리는것 같다.

사소한 습관 뒤에 감춰진 놀라운 심리의 비밀?

웃기지 마시라. 다분히 전문적이지 않은 심리추론이다.

글쓴이는 누구든지 색안경만 벗어던지면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얘기를 하고있다.

다는 전문적인 습관의 기저를 알고 싶었을 뿐이고~

이 책은 수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니 내가 느낀 이 책은 주관성이 객관성보다 강한 색을 띄는 경향을 가진 수필이다.

글쓴이가 이것저것 습관과 사람의 심리에 대해 여러방면으로 접근한 것은 정말 좋았으나,

각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떨어져 나는 글쓴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은이는 "A는 B다. B는 C다. C는 D다. 따라서 A는 D다."라는 사고구조에 익숙한것 같다.

글쎄...예술과 삶에 대해 20년간 공부한 사람치고는 너무 안일한 전개이지 않은가 싶다.

사실, 나는 연역적 전개보다 귀납적 논리전개를 좋아한다.

내가 공학을 선택해 공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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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트위터 이벤트로 내게 배송되어온 온 이 책. 아니, 그 책 Das Buch.
잔뜩 기대에 부풀어 포장지를 뜯고 나온 것은 소리지르는 남자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표지였다.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보다 에세이를 즐기는 내 독서편식때문에 바로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을 책장에 꽂기도 전에 이걸 꼭 읽어야만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 든건가?
이벤트에 당첨되고 마냥 책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레 배송되어 온 이책의 표지를 보고나서부터 일까?
아니면, 사이클을 하며 처음으로 책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보기 시작했을때부터 일까?

강렬한 끌림에 미친듯이 활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2시간도 안걸려 책한권을 다 읽었다.
꼭 이 책의 주인공 비블리씨의 삶이 내 삶에 빙의된 것처럼.
책 한권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도 사실은 불편하다.
우습게도 이 불안함의 원인은 나도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면, 책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책을 단번에 다 읽었고, 감히 이 책을 평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때까지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건가?'
'내 분석력이 이토록 모자랐던가?'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꼭 서평을 쓸것이라고 트위터에 알린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읽고 나서 도무지 뭐가뭔지 알 수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혼란스러움, 내 편향적 독서습관, 내 모자란 집중력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심지어는 이 책의 가치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라는 한국판 이름은 뭔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만,
원어인 "Das Buch(그 책)"라는 책 제목은 영혼이 쏙 빠진 느낌이 든다. 다르게 말해서 섬뜩하다.
내가 분석한 것은 오직 하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이 책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이란 이런 것 이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게 아니라, 독자에게 사람과 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소설의 내용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것이다.
정말로 책이되어버린 비블리씨가 현실에 존재헀을리 만무하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자신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내 평생처음으로 책이란 물건에 존재의 의미, 다시말해 자아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설속에는 이런 인상깊은 구절이 나온다.

"책, 곧 죽은사람이 산 사람이 가진 특권보다 우월한 권리를 행사한다."



2001년에 쓰여진 이 책이 2010년을 살고 있는 내게 일으킨 동요는 2110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책속에 머무르고 그것은 책의 운명이 된다.

"운명이란 바로 당신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으니,"



평생을 책들 속에 파뭍혀 지내오던 비블리씨가 마침대 "그 책"을 통해 책이 됐을때, 그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유한하고 일회성이 있다. 하지만 책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집어 앞으로 펼쳐나가면 다시한번 그 운명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블리씨는 결국 인간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그리고 비블리씨를 책으로 만들었던 "그 책"은, 소설 말미에 다른 주인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그 운명을 시작하려 한다. 새 여주인도 아마 책이 되겠지.

사람이 "그 책"이 되서 운명을 다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책"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시작한다. 이런 "그 책"의 끔찍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잔인한 설정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책안에 있는 작가의 운명은, 다시 처음부터 읽는 행동을 통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밤에 책이 되는 꿈을 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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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적힌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문구. 표지의 그 문구는 20대의 성공담을 담은 에세이들에 열광하고 있던 나에게, 새 자기개발서를 발견했다는 묘한 흥분감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책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그 사실에 묘한 흥분감

 

은 금새 사그라들었고, 나는 500페이지나 되는 긴 책을 다 읽어나갈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책은 책장이 넘겨질 수록 나를 흥분시켰다. 작가는 마치 타고난 소설가 같았다. 흔히 볼수 있는 현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진정으로 박학다식한 면모를 가지고서 완벽하게 주인공의 인생을 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요새 내가 강박처럼 사로잡혀있는 "꿈과 성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30년정도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꿈과 성공"을 이룰 수 있는 명확한 해답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누구나 간절히 바라며 살아가는 "탈출"이라는 것이 꿈의 성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시말해, "내가 니 나이때는 말이야." 또는 "내가 당신이라면 더 나을 수 있어."와 같은, 충고를 가장한 어른들의 푸념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해줬다.


가족이라는 의무에 사로잡혀 꿈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벤. 두 번째 삶에서 그는 꿈을 옭아메던 그 의무에서 벗어날수 있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삶에서 벤은 그토록 바라던 사진사로서의 성공가도를 열 기회를 잡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번엔 신분의 은닉을 위해 성공을 하면 안된다는 의무에 사로잡히고 만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탈출하고 나니, 꿈에서 탈출해야만 현실에서 살아남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의무는 저버릴 것이 아니라, 꿈을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우리가 안고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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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 모습을 기억해 내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이 존경하는 마음속 영웅을 떠올리는 것이지요.” 고인이 된 잡스의 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스티브 잡스라는 IT계의 영웅덕분에 이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혁신의 혜택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됐다. 지구상의 수많은 애플의 추종자들은 그를 마음속 영웅으로 꼽는다. 그의 죽음에 전 지구인이 헌사를 바쳤고, 상실감을 느꼈다. 그가 존중받아 마땅함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천재라고 떠받들면서도, 실은 그를 혁신을 찍어내는 기계로 보고 있다. 많은 이들은 그가 좀 더 살아서 아름답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뜻에서 애도를 표할 뿐, 그가 혁신 기계이기 이전에, 수술을 거부하고 병마에 싸우며 죽어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무의식중에 묵과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자서전을 적극적으로 읽길 권한다. 전기 스티브 잡스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실히 볼 수 있다. 그가 남긴 제품들의 완벽성과는 상반된 그의 인생은 지극히 흠이 많고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그의 인생과 그가 남긴 혁신적인 제품들은 공통적으로 단순성은 궁극의 정교함이다.” 혹은 기능은 형태를 따라간다.”의 믿음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과학의 교차점에 혁신이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것을 증명한 역사 속 인물들(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의 계보를 이었다는 점에서 나의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는 그의 너무나도 강력한 인성을 공학과 예술의 경계에 잘 버무릴 줄 아는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게 그의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 영웅 중 한 명의 인생을 망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서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앞서, 내가 앞으로 추구해야할 내 본질로의 시간여행을 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최근까지 나는 디자이너건 엔지니어건 간에 승자의 위치에 서기 위한 정답은 바로 인문학이라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본질이 융합에 있길 바래왔고, 잡스의 본질은 융합에 있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잡스는 훌륭한 인물 그 이상의 영웅이었다.

나는 위인전이나 자서전을 읽을 때, 보통의 경우 먼저 이 사람이 훌륭한지 아닌지를 나름대로 판단하고서, 전자라면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할지, 후자의 경우라면 어떻게 될 수 있을지 양자 모두의 교훈을 챙기려 한다. 하지만 잡스의 경우, 책을 덮었을 때, 나는 교훈을 발견할 의지를 상실해버렸다. 이전까지 훌륭한 글귀나 인생을 살펴봤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강렬한 번뜩임이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기분 모두 다 아니었다. 분명히 스티브 잡스는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와 같은 삶을 살려고 발버둥 치거나, 이리도 괴팍한 그를 내 인생의 영웅으로 삼는 행동은 진정 정신 나간 짓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자신의 전기집필을 부탁한 것이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작슨은 책의 대부분에서 잡스의 삶을 나와 같은 "잡스에 비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정신을 가지고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필터의 역할을 했다. 그는 서문에서부터 잡스에 대해 라쇼몽 효과를 갖는 이들을 경계하며 책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하려 애쓴 점이 드러난다. 비록 말미에 이르러 자신 또한 어느 정도 잡스의 현실 왜곡장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것은 잡스의 매력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다. 책은 그 두께만큼이나 방대한 양의 인용 기사와 인터뷰의 출처가 실려 있어 흡사 논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학기 중의 짧은 기간 동안에 두 번이나 읽었던 과정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서평이라 함은 먼저, 그 작가와 동질성을 느낄 정도로 책에 공감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고, 그것이 갖추어 졌을 때, 나만의 해석을 통해 저자를 뛰어넘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두 번 읽은 과정은 이러한 서평의 첫 단추를 꿰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는 시작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앞서 밝혔듯이 저자는 결말에 이르러 그 자신마저도 어느 정도 잡스의 현실 왜곡장에 말려들고 마는 모습을 보였다. “역사는 그를 에디슨과 포드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할 것이다. 그 덕분에 애플은 수십 년 후에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가장 번영하는 기업으로 남을 것이다.”

저자가 책의 끝에서 드러낸 주관의 본질은 잡스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다. 나는 첫 번째로 책을 다 읽었을 때, 잡스의 인생이 표면적으로는 비정상적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 이유는 내가 잡스처럼 현실을 왜곡하면 그것이 추진제가 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현실 자체에 일격을 당하기 십상이라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책을 다 읽었을 때, 나 또한 라쇼몽 효과에 중독된 잡스 신봉자가 돼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통해 나만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책에서 배운 잡스의 방식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우하우스의 형태는 기능을 따라간다.”가 아닌, “기능은 형태를 따라간다.”라는 잡스식의 원칙이 창조 행위의 과정에서 그 본질의 탐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듯,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나는 그의 집필의 본질, 즉 잡스의 원칙에 빨려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이도 나는 요새 유행어처럼 불리는 앱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매일 아이폰으로 조깅을 관리하고, 맥북 에어로 발표 자료를 만들고, 애플의 공식 행사 기조연설을 아이패드로 실시간 시청하는 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애플의 제품을 쓰면서 항상 모종의 경외감 또는 동질감을 느낀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의 CEO이자 창업자이며,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의 모델로도 잘 알려진 래리 엘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스티브는 첨단 기술 업계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창조해 낸 유일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포르쉐, 페라리, 프리우스 같은 자동차를 갖고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모는 차가 나를 말해 준다.’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애플 제품에 대해서도 그렇게 느끼지요.” 그리고 나 또한 그러했다. 그는 첨단 기술 업계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창조해 낸 유일한 인물이었다. 내가 애플 제품을 쓰면서 느끼는 경외감이나 동질감은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제품들의 무결성과 완벽성이, 예술가적인 잡스의 기질과 완벽에의 강박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선을 갈구했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선도, 기업의 이윤도 아닌, “제품그 자체에 대한 맹신을 고수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의 전기를 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그의 제품에서 느낄 수 있게 됐다.

 

그의 삶은 그의 제품처럼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는 슬로건을 따른다. 전기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혁신을 이룬 예술가라기 보단,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고, 뚜렷한 주관과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아 괴팍하고 악마와 같은 모습을 보였으며, 현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해 상상대로의 자기세계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인생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한 채로, “하면 된다.”라는 것을 밀어붙여 증명해 낸 과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단순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과 그의 제품에서 드러난 단순성은 미니멀라이즘이나 잡다한 것의 삭제라는 정도로는 평 할 수 없었다. 잡스는 진정으로 단순하기 위해서 매우 깊이 파고들어야 함을 알았고,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함을 잘 보여줬다. 그가 제품 디자인의 완벽성과 단순함을 추구하기 위해 제품 디자인에 대한 본질, 제조 방법들 간의 연결에 가히 광적인 집착을 보인 점, 그의 인생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잡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제대로 집중 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집중하기 위해 아픔을 감수하고서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가족들을 외면함으로서 픽사와 애플을 성공적인 기업으로 일궈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그를 혁신을 찍어내는 기계”, “괴팍한 IT영웅따위로 단순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있기까지의 과정은 LSD, 인간관계, 가족관계, 롤 모델, 선불교, 폴라로이드사의 잡지 등 많은 것들의 복합적인 상호 작용이었다. 그는 복잡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서 얻는 단순성을 추구한 결과 아름다운 제품들과 아이패드에 이르는 IT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혁신을 멈추는 것을 경계했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꾀하기 위해 현실을 밀어붙였다. 췌장암 선고에도 수술을 기피한 잡스의 행적에서 그런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컴퓨터는 새 시대의 LSD와 같다. 더 이상 환각 상태에 들어가 신성에 파장을 맞추고 속세를 벗어나라.’가 아닌, ‘켜고 부팅하여 교감하라.’가 된다.”

-Steve P. Jobs-

이 시대의 LSD는 뭘까? 그리고 내 인생의 LSD는 뭘까? “과학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은 각자가 서로에게 발전의 실마리를 안겨준다.”라는 것이 내 믿음이다. 하지만 소위 내 인생의 LSD가 인문학이라고 하기엔 다소 추상적이어서 1%부족한 느낌이다. 과학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이 가장 잘 버무려져 있는 예술품, 그것은 바로 자동차다. 최고 수준의 과학과 거의 모든 양식의 예술사조가 반영될 수 있을 만큼의 디자인적 자유도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가 훌륭한 인성과 인문학을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변모하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 반문화와 기술의 교차점 한가운데서 그것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을 지향했던 잡스의 정신을 자동차에 쏟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One more thing). 내가 왜 그토록 포르쉐에 열광해 왔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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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6699ccgenevois.com/clfrance.php BlogIcon christian louboutin 2013.07.17 06:5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냐구

책은 도끼다_박웅현

2012.07.03 18:21 |

 

 

다독, 다작, 다상량. 중학교 문학시간에 외워 아직까지도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말이다. 책을 많이 읽고, 매일 일기를 쓰고, 건전한 생각을 많이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은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절대적인 믿음이었으며 당연한 의무와도 같았다. 하지만 점점 더 머리가 크면서 입시와 취업이라는 현실에 취해 내가 읽던 고전은 문제집과 전공서적으로, 매일 쓰던 일기장은 자기소개서와 연습장으로 대체돼 갔다. 이 점은 나와 같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의 터울아래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이 취업과 입시에만 열을 올리기를 강요 받고 있다. 인문학은 이제 추상적이며 어렵고 귀찮은 것, 다시 말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전락해 버렸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듯, 정신을 무시한 채 물질과 실존만을 존중하는 사회는 개성이 없으며 결코 구성원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다독, 다작, 다상량 하는 삶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냐고. 인문학에 바로 답이 있다고. 저자는 『책은 도끼다』에서 여러 고전들과 시집을 추천한다.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되는 각각의 책들이 삶의 이정표라면, 그것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연애, 직업, 학업 전반에 걸친 삶의 큰 스펙트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의 곳곳에서 자신의 상황과 삶에 맞는 화두를 찾아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연말 선물로 지인들에게 같은 책을 보낸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 책은 나에게 훌륭한 인문학 입문서가 되는 동시에, 건전한 풍요로움이 어떤 것인지 꿈꿀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책은 인문학을 통해 각자 삶의 화두를 발견하고, 행복에 이르는 건전한 자세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렇다면 내 삶의 화두는 무엇인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transportation으로 바라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책과 인문학을 통해 자동차로서 내 삶을 성숙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고 싶었다. 나는 공학도이면서 디자이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설명할 때 Designer Engineer의 합성어인 Designeer라는 단어를 말한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던 내게 과학과 예술은 크게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과학과 예술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맥락에 따라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와 기계공학과를 복수전공하면서도, 두 가지 분야의 합일점을 쉽게 찾지 못했던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과학과 예술이 융합하는 문제란 바로 물질과 영혼이 공존하는 문제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물질과 영혼이 융합한 가장 신비로운 대상인 인간과 자연. 바로 그 곳에 답이 있었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인간과 자연을 글로서 설명하는 학문 분야다. 앞서 밝힌 저자의 권유, “인문학에 답이 있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지 않았을까?.

성서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 보기에 좋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간 또한 자신을 자신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사람들은 그런 제품을 보고 보기에 좋다고 말한다. 보기에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기술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담길 인간적 멋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자동차회사가 최고가 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책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와 같은 인용구가 등장한다.

메타포란 위험한 것임을 몰랐다. 메타포를 가지고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메타포가 하나만 있어도 생겨날 수 있다. 연민, 안쓰러움, 동정이 단 하나만 있어도 사랑은 시작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순수의 영역을 침범해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변해간다.

나는 이 구절을 보고 훌륭한 자동차란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연민. 그것이 개발자, 소비자 그리고 자동차 잡지 기자들이 자동차를 사랑하게 만드는 최고의 메타포가 된다.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연민, 즉 동경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연민과 동정심은 불행, 행복, 환희, 고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을 공유하게 한다. 이렇게 감정이입이 가능한 차는 사람이 자동차를 보기에 좋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그 사람에게 자동차를 구매하는 행위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의 모티프 중 하나인 그래야만 한다.”로써 밖에 설명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문학은 단순히 고전이나 일상의 영역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서까지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나는 아직 앞서 언급한 내 삶-과학과 예술이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정확한 목적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만남으로서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게 됐다. 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답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인문학은 공학과 디자인의 가장 끈끈한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새해에는 다독, 다작, 다상량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삶을 살자. 인문학을 통해 내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경건하게 답을 찾아가는 삶을 살자. 고은과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포카혼타스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발견을 통한 행복을 위해, 내 안테나의 촉을 지속적으로 예민하게 만드는 삶을 살자.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한다.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듯, 모처럼 이 책을 다이모스의 인턴 면접장에서 집게 된 사실에 행복해 지는 것 같다.

신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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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1502.jasonjordans.com/uggboots.php BlogIcon ugg boots 2013.07.13 01:55 Address Modify/Delete Reply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있으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TGIF(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들이 집단지성을 지향하는 척 하면서,
사실 시뮬라시옹으로 앵벌이하는 약아빠진 장사치일 뿐이라는 근본을 확인했다.
그저 공유, 검색으로 요약되는 행동위주의 방식은
행위만이 가치가 있을뿐, 생각은 지양하게 만든다.
생각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피상적이고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개개인은 그저 자신이 황색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TGIF의 노예가 되다시피한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책 한 줄 이라도 더 읽고, 좋은 사람과 5분이라도 더 얘기하는 것이
이 시대에서 머저리가 되지않기 위한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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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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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a.coachfactoryoutletsv.com/ BlogIcon coach usa 2013.04.03 04:0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름다운 여자가 해바라기하는 걸 좋아해요

모털엔진 Motal Engine

2010.05.18 10:48 |
 
 
 

 2002년에 나와서 8년만에 한국에 번역본으로 출판된 모털엔진. 원래는 SF라곤 잘 안보는 편인데, 북피니언들의 추천과, 인터파크 도서 아이폰어플 설치에 힘입어 읽게 됐다. 이 책의 원본표지를 보고있자니, 어릴적 방안가득 빽빽하게 채워진 아버지 서고에서 SF소설만 골라뽑아 신기한 기계 그림들만 보고 넘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내게 과학이란 현실적인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무서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 막연한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바뀐것일까? 나는 지금 과학과 공학을 업으로 삼고 있다. 자라면서 과학은 내게 막연했던 두려움을 잊게 만들고, 모든 현실을 통제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는 법을 알려줬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쩌면 과학을 신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SF(공상과학소설 Science Fiction)과 영화는 분명히 Fiction이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가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나는 모털엔진이라는 책을 픽션으로서 저자의 주관성을 고려하며 읽기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참거짓을 가려내는(다분히 리얼리즘이 가미된) 방식으로 읽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분명 과학신봉주의자 였으니까 말이다.

 흰수염고래가 멸종한지 천년이 지났고, 미국과 영국이 몇 천년전에 사라져버린 먼 미래사회에서 엔진과 바퀴가 왠말이며, 아르곤 전구가 왠말인가? 그리고 과연 그 시대에도 "박물관"이란 것이 물질적으로 존재할 수 있냔 말인가?

 이 소설의 배경은 "60분 전쟁"이라는 설정에 이르러 식상함의 극치를 보인다. 왜 먼 미래를 쓰는 소설가들과 영화 작가들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지구적 규모의 전쟁 따위만으로 메꾸려 하는가?

 하긴... 하루 주식시장 예측도 제대로 못해 쩔쩔메는 인간이 미친듯 먼 미래를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게 가당키나 할까마는.... 그러나 예전의 많은 공상과학 소설의 개념들, 제품들, 미풍양속들, 정치적 구조 및 이념들의 상당수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 하다.

 이 책은 잊고있었던 어릴적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뭐~ 책 내용은 온통 비과학적인 내용 투성이라, 책을 읽는 내내 혐오스런 눈빛을 감출수가 없었지만, 내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과학신봉주의자(Sciencidian정도가 되려나?)였던 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은, 이 책이 내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던 책이라는 사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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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레미와 인디언 할아버지와의 대화체로 진행 됩니다.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복돋아 주는 인디언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을 제 마음속에 따뜻하게 새겨넣을 수 있었던 책입니다. 그저 부담없이 빠른속도로 읽기에 좋지만, 다 읽고 나면 가볍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는 책이랄까요? 얼마전에 읽었던 "사람풍경(김형경 저)"이라는 책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한 저자가 전문가의 입장에서 다소 어려운 용어로 인생과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로인해 인생의 깨달음을 전해주려는데 반해,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나 단순하고 구수하게 인생의 깨달음을 공유합니다. 평생을 자연을 벗삼아 살아온 인디언 할아버지의 친근하고 구수한 언변은 독자들에게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다소 어렵고 풀릴것 같지않아 숨이막히는 질문의 대답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합니다.
 
우리가 걷기 시작할때, 첫번째 걸음과 마지막 한걸음 중 어느것이 더 중요할까요? 둘 다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걷는 과정중에 다음 한걸음을 더 내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걸음이 얼마나 더디건, 얼마나 미미하건 간에 우리가 한 걸음만 더 내디딜 수 있으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걸음들 중의 하나가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성공이란 대개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법이니까요.

한 걸음의 보폭이 어느 정도의 거리가 되어야 한다든지, 우리가 목표한 길로 정확하게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식의 규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항상 힘차야 한다는 법 또한 없습니다. 인생은 그저 한 번에 한 걸음씩만 걸으라고 요구하니까요.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배신하는 행위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않을 경우,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되는 셈이다.


넘어지지 않고서야 언제 일어서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겠느냐?

본문 내용 중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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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는어플을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어플이 제가 봤던 어플중 가장 맘에 드는 어플인데요, 가격도 공짜입니다.^^
이것은 iReadItNow라는 앱스토어 어플인데, 앱스토어에서 지니어스가 제게 추천해준 어플중 하나입니다.

itunes 어플다운 - 아이튠즈 바로가기

itunes 유저 평점 - 






처음 iReadItNow를 실행시키면, 아무것도 나오질 않습니다. 오른쪽 위의 +버튼을 눌러 책을 추가해줍니다.






책 추가 화면이 뜨면 책표지사진, 타이틀, 작가외의 기본적인 사항들을 입력할 수 있는 칸이 나옵니다. 이걸 귀찮아 하시는 분들을 위해 iReadItNow어플은 웹상의 책데이터를 통해 책의 정보들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Google book search기반으로 검색하도록 돼있고, 사용자가 원하는 웹기반을 선택 할 수도 있습니다. 제목이나 저자등으로 검색해서 나온 적절한 결과물을 찾아 선택하면, 책의 표지, 출판년도, ISBN넘버, 페이지 수까지 기록이 됩니다.



책을 찾아서 추가했으면, 이제 이책에 대한 읽기 정보를 입력 할 수 있습니다. 읽기 시작하기/이미 읽었음/위시리트스 중 하나를 선택해 태그를 추가할 수 있고, 책에 대한 메모나 기억에 남는 구절, 별점등을 달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http://firstlub.tistory.com/269


저는 이제 막 구매해 날짜별 데이터가 없어 http://firstlub.tistory.com/269의 블로그에서 사진을 발췌해 왔습니다.^^; 이렇게 최근 7일간의 책읽기 실적(?)을 개략적으로 표시해 주는 그래프가 자동으로 작성이 되고, 페이지 수도 표시할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http://firstlub.tistory.com/269


iReadItNow는 커버플로우 식으로 책을 정렬 할 수 있는 기능도 포함합니다. 아이패드와 찰떡궁합을 이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iPhone OS4.0의 iBooks가 이 어플의 기능을 몽땅 지원해버릴지도 모르겠군요.



iReadItNow는 제가 읽은 책들에 별점을 메긴 것을 원 그래프로 보여주는 기능도 포함합니다. 정말 BookWorm들께는 천금같은 어플리케이션인 것 같네요.


저장된 데이터는 트위터와 연동시킬 수도 있어, 자기가 어떤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어느부분을 읽고 있는지도 맨션을 날릴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은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입니다. 트위터로 이 책에 대한 읽기 피드백을 받는것도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 책읽기가 취미라 읽고 있는 책들에서 인상깊은 부분을 메모하려할때 제대로 된 어플이 없어서 불편했었는데, iReadItNow는 제 가장 큰 불편함을 해소해 줍니다. 개인적인 점수는 10점 만점에 11점을 주고싶을 정도의 훌륭한 어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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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치 소용돌이 같다. 강렬히 끌어당기며 으스스하고 또한 월등하다." -예술과 문학-





김영사 트위터 이벤트로 내게 배송되어온 온 이 책. 아니, 그 책 Das Buch.
잔뜩 기대에 부풀어 포장지를 뜯고 나온 것은 소리지르는 남자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 표지였다.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설보다 에세이를 즐기는 내 독서편식때문에 바로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책을 책장에 꽂기도 전에 이걸 꼭 읽어야만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 든건가?
이벤트에 당첨되고 마냥 책이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레 배송되어 온 이책의 표지를 보고나서부터 일까?
아니면, 사이클을 하며 처음으로 책장을 펼쳐 프롤로그를 보기 시작했을때부터 일까?

강렬한 끌림에 미친듯이 활자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2시간도 안걸려 책한권을 다 읽었다.
꼭 이 책의 주인공 비블리씨의 삶이 내 삶에 빙의된 것처럼.
책 한권을 읽는 동안 전체적인 맥락은 하나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도 사실은 불편하다.
우습게도 이 불안함의 원인은 나도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면, 책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책을 단번에 다 읽었고, 감히 이 책을 평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때까지 책을 너무 편식해서 읽어서 그런건가?'
'내 분석력이 이토록 모자랐던가?'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꼭 서평을 쓸것이라고 트위터에 알린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읽고 나서 도무지 뭐가뭔지 알 수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혼란스러움, 내 편향적 독서습관, 내 모자란 집중력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심지어는 이 책의 가치조차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라는 한국판 이름은 뭔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만,
원어인 "Das Buch(그 책)"라는 책 제목은 영혼이 쏙 빠진 느낌이 든다. 다르게 말해서 섬뜩하다.
내가 분석한 것은 오직 하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이 책에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책이란 이런 것 이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는게 아니라, 독자에게 사람과 책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만을 제공한다. 소설의 내용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것이다.
정말로 책이되어버린 비블리씨가 현실에 존재헀을리 만무하나,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자신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했다. 내 평생처음으로 책이란 물건에 존재의 의미, 다시말해 자아를 부여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설속에는 이런 인상깊은 구절이 나온다.

"책, 곧 죽은사람이 산 사람이 가진 특권보다 우월한 권리를 행사한다."



2001년에 쓰여진 이 책이 2010년을 살고 있는 내게 일으킨 동요는 2110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책속에 머무르고 그것은 책의 운명이 된다.

"운명이란 바로 당신들이 지닌 책. 책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으니,"



평생을 책들 속에 파뭍혀 지내오던 비블리씨가 마침대 "그 책"을 통해 책이 됐을때, 그는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유한하고 일회성이 있다. 하지만 책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집어 앞으로 펼쳐나가면 다시한번 그 운명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블리씨는 결국 인간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그리고 비블리씨를 책으로 만들었던 "그 책"은, 소설 말미에 다른 주인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그 운명을 시작하려 한다. 새 여주인도 아마 책이 되겠지.

사람이 "그 책"이 되서 운명을 다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책"이 되어 새로운 운명을 시작한다. 이런 "그 책"의 끔찍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잔인한 설정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책안에 있는 작가의 운명은, 다시 처음부터 읽는 행동을 통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밤에 책이 되는 꿈을 꿀 것만 같다.

Posted by designeer shyfrag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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